1966년,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에서 '고고(孤高)의 작가'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데뷔 이후 일본의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으며, 80년대 이후 여러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모든 수상을 거부한 그는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좋게 말하면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 나쁘게 말하면 독설을 날리고 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중앙일보에 실린 인터뷰(http://news.joins.com/article/14362397)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위의 내용도 이 인터뷰에 실린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페이지.


    이 책,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이런 마루야마 겐지의 독설을 담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부모, 가족, 국가, 직장, 종교, 연애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거의 필연적으로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그의 의견은 책의 뒷표지에서 간단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믿는 것은 부모 자신뿐이다.

    그 어떤 국가도, 국가란 이름이 붙어 있는 나라는 하나같이, 실은 국민의 것이 아니다.

    모든 종교는 선이라는 옷을 두른 악이며, 원래 자유로워야 할 개인을 속박하는 컬트이다.

    노동자라는 호칭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실질적인 처지는 바로 노예이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위의 이 발언들이 실제 책 내용 중 그 강도가 약한 발언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작가가 그냥 매사 부정적인 인물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위의 경력에 맞물리면 그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하는 독선적이고 매사 부정적인 꼬장꼬장한 늙은이, 라는 인물상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대체 작가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뒷표지에 실린 나머지 본문의 일부를 보죠.

    어떻게 살든 본인 멋대로라는, 자유와 함께하는 삶만이 존재의 기반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쟁취하는 것이고, 죽음은 가능한 한 물리치는 것이다.

    자신의 껍데기를 깨부술 힘은 자신에게만 있다.

    종합해보면, 앞서 말한 '관계'를 저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그 '관계'에 악담을 퍼부으며 자기 멋대로 살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런 말이 있다.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타자에 기댄 삶의 끝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부모와 직장과 사회와 아내와 각종 신과 권력과 권위에 의해 파멸되는, 그런 인생을 안이하게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작가는 이런 '관계'에 기대어 사는 삶을 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이라 부릅니다. '관계'가 주는 안락함에 기대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남이 요구하는 대로 살다가 져버리는 삶, 이것을 인간이 삶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남에게 고삐를 내어주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지 말고 스스로 그 고삐를 단단히 쥐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결심하고, 스스로 길을 결정하고, 자신의 의지로 집을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식의 의무이며,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다.

    작가가 말하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삶은 방종과 다릅니다. 작가가 요구하는 삶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다움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지성쪽에 몸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이란 합리적인사고를 가리키니, 즉 이성으로 사는 것이다.

    부조리하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에 길든 현대인이 강하고 발랄한 생을 실감하려면 사고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밖에 없다.

    나약한 인간이 강하게 살려 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고력밖에 없다. 즉, 이성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

    이성의 길을 걷는 순간 인생은 빛나기 시작한다. 자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더불어 인간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그 생각에 따라 스스로 길을 결정하고 걸어나가는 삶.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위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볼 것을 요구합니다.

    아직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고민도 해 보지 않았는데, 거의 아무런 근거 없이 단순히 이미지만으로 나는 이런 인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오류의 근원이다.
    자신 속에 어떤 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모른다. 그 보석이 하나뿐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몇 개가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평생을 들여 그 보석의 원석을 갈고닦을 수 있느냐에 삶의 진가가 있다. 그 외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무의미한 인생이다.
    그러니 이제 싫고 좋음이나 자기류의 해석은 모두 무시하고, 온갖 일에 도전해 보면서 자기 안에 소리 없이 숨겨져 있는, 곤히 잠들어 있는 재능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발견하는 생의 목적과 직결되는 위대한 행위이며, 젊었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름 아닌 그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저마다 재능을 갖고 있으며 이를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작가의 생각은 소위 말하는 '인간 찬가'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휘둘려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이런 '관계'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아라, 라고 하면서 말이죠.

    의미도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즉,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의지의 자유로움이 존중된다는 것이며, 의지의 세계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컨대 스스로 그것들을 발견하면서 멋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영원한 암시인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렇게 멋진 조건과 권리는 없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이 인생은 타인에 기대어 스스로의 권리를 내려놓은 삶입니다. 인간은 불안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자립이고, 멋대로 사는 삶입니다.
    저는 이 책을 독설로 위장한 인간 찬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모순에 찬 이 세상 속에 지극히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존재하는 가엾은 목숨이라 부르면서도 잠재적인 다양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 말하고, 인생따위 엿이라 먹으라 하면서 인생이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라 말하죠.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에 독설을 퍼붓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립한 삶, 자립한 인간. 현재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Posted by 독수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