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을 읽은 이야기.
2019년 이전 기록.
2015. 9. 13. 01:17
한 때 작가가 되는 것을 꿈꿨던 적이 있습니다. 소설을 몇 편 쓴 적도 있었고, 여러 작법서를 읽기도 했습니다. 제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느낀 후 그 꿈은 접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약간의 미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쓰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작법서를 확인하고 구입하는 일이 지금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 쯤에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표지 출처 : 알라딘페이지.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일단 제목부터 절 홀렸습니다. 그 대작가의 수업이라니. 여기에 헤밍웨이의 유일한 문하생이 쓴 것이라는 소개는 더욱 흥분시켰습니다. 아널드 새뮤얼슨이 헤밍웨이의 문하생으로 있는 동안 그에게 받은 가르침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는 추측은 이 책의 제목과 저자 소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했을 겁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닌지라 책을 발견하고서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죠.
책은 저자 아널드 새뮤얼슨이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를 만나러 무작정 키웨스트로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미 유명 작가가 되어 별의별 사람들이 찾아와 수작질을 벌이려는 것에 이골이 난 헤밍웨이는 자신의 저택을 찾아온 남루한 행색의 이 젊은이를 보고 처음엔 미심쩍어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읽고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찾아왔다는 말에 곧 경계를 풀고 그를 맞이합니다.
헤밍웨이에게 글을 쓰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들과 기타 조언을 듣고 책 몇 권을 빌려받은 아널드는 며칠 뒤 그에게 마침 내가 요트를 구입했는데 이를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 괜찮다면 이 일을 맡아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단지 헤밍웨이를 만나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키웨스트로 왔을 뿐, 앞으로의 계획이고 돈이고 아무 것도 없던 아놀드는 이 제안을 수락하죠. 그리고 키웨스트에서, 그리고 쿠바에서 헤밍웨이와 함께 약 일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일 년 동안 아놀드는 일을 하는 사이사이 글을 써서 여러 잡지사에 보내기도 하고, 퇴짜맞은 후 헤밍웨이의 여러 조언을 듣고 글을 수정하거나 새 글을 쓰기도 합니다.
다만 이 헤밍웨이의 조언은 책 전체를 봤을 때 약 일 할, 더 쳐줘봐야 이 할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된 내용은 헤밍웨이가 평소 지내는 모습, 헤밍웨이와 함께 낚시를 나간 이야기, 헤밍웨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그 약간의 조언만으로도 만족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 제목을 보고 책을 펼친 분들은 실망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죠. 책을 덮으며 낚였다, 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낚시 이야기가 거진 절반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라는 제목에 연연하지만 않는다면 이 책은 저자가 바라본 헤밍웨이의 일상에 대한 책이 됩니다. 그가 어떤 취향, 어떤 취미를 갖고 있었고 또 얼마나 낚시에 미쳐 있었는지, 자기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말을 하고 다녔는지, 집필 외 어떤 생활을 하며 지냈는지에 대한 것 말이죠. 사실 이 책의 의의는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헤밍웨이를 추억하는 낡고 빛바랜 편지와 사진, 낚시하는 중에 헤밍웨이가 한가한 틈을 타 아버지한테 받아 적게 한 항해일지가 담긴 상자 하나를 유품으로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그것 말고도 당신의 기억이 생생할 때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와 사건들을 기술한 300쪽 분량의 원고를 남겼다. (중략) 헤밍웨이가 쓴 글 대부분과 그에 대해 쓰인 글 대부분을 읽어본 후에야 나는 아버지가 남긴 회고록이 실제로 그것들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있음을 확신했다. 회고록이 독특하다고 여긴 것은 그 기만적인 단순함 때문이었다. 그것은 헤밍웨이와 함께 얘기하고 글을 주고받고 낚시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스물두 살의 중서부 태생 시골 청년의 눈에 비친 대로 적고 있었다.-다이앤 다비(아널드 새뮤얼슨의 딸)의 서문 중.
즉, 이 책은 애초에 저자가 헤밍웨이와 지낸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는게 목적이죠. 왜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야 하겠죠, 이 책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이 목적 때문입니다.
제목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자 하는 분께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 적은 분량에 만족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헤밍웨이가 어떻게 일상을 보냈는지 알고자 하는 분께는 귀중한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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